처음 해외에 나간 경험담 2011년 CES 참관기

2011년 CES 참관하면서 대학원에 제출한 자료

40년 만에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고 국제공항으로 떠나는 나의 마음은 두려움 반과 기대 반 등으로 많이 설렜다. 공항버스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낯익은 풍경들을 뒤로 하고 과연 미국이란 나라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기대감이 공항에 가까울수록 더 커져만 갔다. 그렇게 나의 미국 방문기는 2011년 새해와 함께 시작되었다.

항공권을 받고 수하물을 부치면서 액체 나 라이터 등은 휴대하는 가방에 넣지 말고 수하물에 부쳐야한다는 기본적인 수칙을 알았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에 들어서자 모든 금액이 달러로 표시되어 마치 미국에 도착한 거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국제공항이라 그런지 규모가 대단했으며 파는 물건 또한 매우 비싸보였다. 이곳에서 면세품을 사면 여행 내내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싸므로 여기서 많이들 산다고 하였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이곳 면세점에서 주로 화장품, 주류, 담배 등을 사곤 하였다. 이륙시간이 많이 남은 터라 면세점을 주로 돌아다녔지만 대부분의 물건은 그리 생소한 것은 없었다. 게이트 앞에 가서 이륙시간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눈이 내린 인천공항은 한 겨울의 경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으며 분주히 움직이는 차량과 사람들의 모습이 새해의 활력을 불어 넣는 것 같았다. 게이트를 통해 항공기를 탑승하는데 항공권과 여권을 검사하고 다시 검색을 했다. 비자를 물어 보았으나 비자면제프로그램이라고 말하고 통과되었지만 전면 검색에 걸리는 인원이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무작위로 선택되어 정밀검색을 받는다고 하였다. 내가보기에는 즉흥적으로 인상을 보고 판단하는 거 같았다. 일종의 검사관의 감이랄까. 매트릭스에서 말하는 감각이 이성보다 빠르고 그것에 의지해서 행동하는 인간이 결국은 기계를 뛰어 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나게 했다.

드디어 항공기에 탑승하였으나 가운데 자리라 그런지 생각보다 좌석이 매우 좁았다. 보통 타는 고속버스보다 좁고 옆 좌석과 바로 부딪히기 때문에 많이 불편하였다. 오후 4시에 이륙하여 식사를 두 번 먹고 영화를 3프로 정도 보고나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잠을 자야 한다는 말에 눈을 부쳤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첫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 비행기내부에서 지구 지도의 낮과 밤을 표시하는 정보가 나타나는데 유용한 정보인거 같았다. 외부온도와 현재 속도 등을 표시하는 점은 승객으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역시 모든 정보는 쌍방향으로 소통이 되어야 신뢰가 생기고 효율도 높아지는 것 같다.

기나긴 비행시간이 지나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니 AM 10:00 되었다. 옆 좌석의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샌프란시스코는 정말 아름다웠으며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곳은 일 년에 400회 정도 발생하는 지진 때문에 높은 건물은 없고 대부분이 2층 높이의 목조건물이 대부분이었다. 내 느낌으로는 군산의 어느 골목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인구 50만이 거주하고 있다는 말에 남양주시와 인구가 비슷하여 규모도 거의 같으려니 했는데 근처의 도시들이 전부 연결되어 있어서 꽤나 크게 보였다. 마치 한국의 수도권처럼 도로 하나 또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도시가 나뉜다.

그 예전에 금광이 발견되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도시가 샌프란시스코였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청바지가 여기서 만들어 졌고 리바이스가 그 원조라고 했다. 이곳의 주택은 앞마당과 뒷마당이 있으며 보통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안에는 방3과 거실 그리고 주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 32평 아파트와 비슷한 거 같다. 태평양 연안의 도시라 그런지 한국의 3~4월 정도의 날씨에 무척 포근했다. 이런 천혜의 날씨에 많은 식물들이 자라 숲을 이루고 할 줄 알았는데 주변의 경관은 척박한 땅 그 자체였다. 그래도 사람들이 심은 나무가 공원을 이루었는데 보이는 산은 황량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와 시내관광을 하고 시내에서 백화점 구경을 하였다. 리바이스가 매장을 방문했는데 규모는0 4층이고 각 층마다 남성, 여성, 어린이로 구분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주로 세일품목은 40달러가 기본이며 신상품은 80달러 정도 하였다. 마땅히 살만한 제품도 눈에 들지 않고 또한 이곳보다 Las Vegas가 더 쌀지 모른다는 생각에 쇼핑을 그만두고 호텔로 이동하여 첫째 날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호텔에서 짐을 꾸리고 나서서 스탠포드 대학교로 이동하였는데 주변의 경관이 참 이채로웠다. 안개가 밀려오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고 묘한 느낌을 주었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규모에 놀라고 동영상 강의로만 보던 중앙의 건물은 무척 아름다웠으며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 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다닌 모습이 이채로웠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학비는 년에 35,000달러 정도한다는 소리에 놀랐다. 공부만 잘해서 올 수 있는 대학은 아니며 재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학생들이 달리 보이곤 했다. 경제학부 건물에 들어가서 슬쩍 수업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4~5명의 학생과 교수가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며 굉장히 자유로운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일단 학교의 규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으며 대다수의 학생들이 자전거를 통해서 이동하는데 수업이 끝나고 한 무리의 학생들이 자전거로 이동 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볼 만했다. 그 곳의 Book Store에서 기념품을 살려고 들어갔는데 비싼 가격에 놀라서 생수만 사가지고 나왔다.

스탠포드의 정식명칭은 The 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 이다. 유래는 아버지 스탠포드가 아들 스탠포드를 기념하기 위해서 설립하였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가 30여명이나 나오고 근처의 UC버클리와 쌍벽을 이룬다고 한다. 아들 스탠포드가 유럽여행 중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그때가 16살인가 했다고 한다) 아버지 스탠포드가 원래 인색한 구두쇠였는데 아들을 위해서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Harvard 대학교에 전화를 하였다고 한다. Harvard의 이름을 Stanford로 바꾸면 "내 전 재산을 기부하겠소."라고 harvard에서는 당연히 거부한다고 편지가 왔고 이에 Stanford씨가 대학을 설립하여 스탠포드 대학교가 되었다고 한다.

메인 광장에 붉은 지붕으로 멋있는 건물들이 있는데 그곳에 아버지 스탠포드와 아들 스탠포드 그리고 아내 스탠포드가 있었다. 한 가운데 교회건물이 있는데 그곳이 가장 멋있었으며 그곳의 대학생들은 아무 곳이나 바닥에 주저앉아 햇볕을 쬐는 것을 좋아하는지 벤치보다는 바닥에 앉아 있는 게 많이 눈에 띄었다. 한국과는 많이 다른 문화였다. 한국에서는 그늘을 찾던지 아니면 의자나 깔고 앉을 것인데 이곳의 학생들은 햇볕에 그냥 노출되어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Google 본사에 가서 한국인 직원 두 명의 마중을 받고 방문 하였는데 안드로이드 개발팀의 건물에서 방문자 등록을 하였는데 실제 안드로이드 팀이 상주하는 건물은 생각보다 작았다. 이동하여 실제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매우 자유롭게 일을 하고 있었으며 건물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일하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주변에 먹을거리가 항상 있으며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하였다. Google의 인사제도는 각 팀의 팀원이 각자를 평가하고 팀장이나 이런 수직적인 구조가 아니고 전부 동료라는 인식으로 일을 한다고 하였다. 또한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워서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의 차이가 없으며 팀 전체로 실적을 가지고 없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실제 생활 중에 어떤 점이 어렵냐는 질문에 영어가 어렵다는 답변이 약간 황당했다. 미국식 교육은 토론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의견을 말할 때 설득하는 방법 등이 어렵다고 하였다. Google이 있는 도시는 무선 랜이 잘 구성되어 있을 것 같고 수업에서 그렇게 배웠는데 실제 무선 랜이 그렇게 잘 잡히지는 않고 게스트만 잡을 수 있는 랜이 있긴 있었는데 그렇게 속도가 잘 나오지는 않았다. 이래서 한국을 “정보통신강국이라고 하는구나.”를 새삼 깨닫게 하였다.

Oakland공항으로 이동하여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타고 샌디에이고를 경유하여 Las Vegas에 도착하였다. South West라는 저가항공을 타고 이동하였는데 3명이 타는 좌석이 두 줄만 있는 조그만 비행기였다. 다른 비행기는 좌석이 배정되어 있는데 South West는 배정된 좌석이 없으며 먼저 앉으면 되는 방식이었다. 예전에 한국 극장이 사용하던 방식으로 먼저 타면 좋은 곳에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서있어야 한다.

 이곳의 승무원들은 한국과 다르게 대부분 아줌마이거나 할머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주 베테랑이었다. 가방을 정리하거나 음료를 나누어주고 또 쓰레기를 수거할 때도 군더더기 없는 동작들이 전문가임을 느끼게 했다. 조종사의 운전솜씨도 아주 뛰어나 이륙하거나 착륙 할 때도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어서 편안했다. 옆 좌석에 미국인이 탔는데 타자마자 MacBook을 꺼내서 Skype를 하였다. SouthWest에서는 5$를 결제하면 무선 랜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 친구가 결제한 다음에 스카이프로 친구와 화상채팅을 하고 있는데 나를 바꿔주어 나도 체험을 해 보았다. 상대편도 놀라고 나도 놀랐지만 아주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I'm Sorry"와 "Thank You"가 습관처럼 나오는 미국인을 보고 아주 예의바르다고 느꼈다. 우린 동방예의지국이라 하는데 길을 가다 부딪쳐도 서로 쳐다보고 말 뿐이지만 이곳은 부딪히면 무조건 “I'm Sorry"라고 한다. 도대체 누가 Sorry란 말인가. 조금만 비켜서 주면 "Thank You"를 연발하고 "Excuse me"를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의지국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렇게 San Diego를 경유하여 Las Vegas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에 호텔들의 네온사인을 보고 내가 진짜로 Las Vegas에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Las Vegas는 인구 200백만이고 도시 안에 공항이 4개나 있다고 한다. 어찌나 휘황찬란한지 미국이란 나라는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느꼈다. 호텔에서 방을 배정 받고 여독을 풀었다. 리베라 호텔에서 묵었는데 근처의 Encore, Wynn 의 시설이 최신이라 구경을 갔는데 카지노에서 사람들이 주로 카드와 블랙잭 같은 것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오래 관찰을 해도 방법을 알기 힘들었다. 그 때문인지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기계에 앉아서 바다이야기와 비슷한 슬롯머신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Las Vegas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갔다.

드디어 날이 밝아 2011 CES 행사장에 갔다. 날씨는 무척 맑았으며 한국날씨로는 4월 정도에 해당되는 날씨였다. 엄청나게 큰 행사장에 놀랐고 많은 인파에 또 놀랐으며 SamSung과 LG 부스 위치와 규모에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 대부분의 가전회사가 주로 내걸었던 기치가 3D TV 였다. 그 외 Intel 이나 Logitech 같은 부품회사들은 인터넷 TV 또는 구글 TV, 스마트 TV 라 불리는 셋톱박스를 선보였는데 기존 인터넷에서 사용하던 화상채팅이랄지 검색과 Web Hard에서 영화를 다운받는 정도였다. 새로운 것은 없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광했다. LG 부스에서는 Green IT를 실현하기 위한 홈오토메이션을 선보였는데 에너지 소모가 적은 공간의 실현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가왔으나 대부분의 방문자에게 그리 반가와 하지 않았던 거 같다. 삼성의 얇고 큰 TV가 매우 이채로웠으며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Sony 나 Panasonic 같은 일본 회사의 제품들은 한 구석에 있었으며 중국제품과 같은 취급을 받았던 거 같다. 짧은 영어로 질문을 하는데 짜증을 내는 중국직원을 보고 기분이 나빴다. 대부분의 제품은 생각과는 다르게 신기술이 그리 많이 적용되지는 않고 학교에서 배웠던 ZigBee 또는 Bluetooth 등의 기술을 보고 싶어서 부스를 돌아 다녔으나 실제 제품은 무선 랜이 대세였다.

Apple은 참석도 하지 않았으나 Apple 관련 accessories 제품이 많이 출시되었다. iPhone에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에게 호평을 받았다. iPhone에 있는 영화를 벽면에 대고 상영하는데 무척 인상 깊었다. 너무 넓은 행사장을 돌아다녀서 그런지 다리가 무척 아팠다. Green IT 제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을 것 같은 나의 추측과는 다르게 3D TV와 iPhone 부속장치들이 주류를 이루는 행사장이었다. 전력선 통신을 하는 모듈을 찾긴 하였으나 와이파이가 주력이라는 직원의 말에 학교에서 배웠던 개인통신은 이제 와이파이가 대세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태양열로 충전하는 회사에서 미래의 전력 원을 보는 거 같았다. 태양열로 핸드폰만 충전하는 줄만 알았는데 다른 제품도 충전이 가능하다고 보여주는 모습에 솔직히 놀랐다. 이게 발전하면 나중에 유리창에 저 필름만 붙이면 전력을 생산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어릴 적 보았던 “미래소년 코난” 이라는 애니메이션의 태양열 발전이 이제는 현실로 나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전제품에  컴퓨터가 내장되고 와이파이로 통신을 하게 되면서 지능화 공간을 구현할 수 있는 세상이 조금씩 현실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자동차 오디오와 카메라에 소프트웨어가 탑재되면서 카메라의 영상을 인식하여 물체를 판단하고 자동으로 제어가 되면서 나중에는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동차가 나오면 “이제 곧 대리기사는 없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만회사 중의 하나는 USB와  연결된 카메라가 거의 현미경 수준이었는데 놀라운 수준이었다. 이를 활용하면 많은 업무에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스를 떠났다. 미국 회사의 경우 미리 프로그래밍 해 놓은 것에 따라 기계가 플라스틱을 조각하는데 간단한 장식품등을 즉석에서 만드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장 자동화 같은 것에 연동하면 많은 일이 변화 생길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2011 CES는 미래의 모습보다는 바로 현재 또는 앞으로 1 ~ 2년 앞의 제품을 보여주는 것 같다. 현재 팔릴 수 있는 것에 초점이 맞다 보니 사실 배웠던 기술이 제품으로 구현되어 전시되어있는 것을 기대하기엔 약간 무리인거 같다. 기업은 돈이 되는 제품만 생산을 할 뿐이지 연구용으로 무얼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 이런 제품들이 우리의 생활을 조금씩 바꾸게 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경제적인 논리가 바닥에 깔려 있으며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변화되어 간다.

이날 저녁은 김치레스토랑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이날 보았던 내용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었었다. 과연 LG 와 SamSung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보았을 때 누가 더 정확히 세상을 바라보았냐는 질문에 LG 측을 더 주고 싶다. 왜냐하면 앞으로는 에너지 절감이 주된 테마가 될 것이고 그것에 LG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3D TV는 모든 가전회사들의 테마이고 나만의 새로운 주제를 제시해야 한다고 보았을 때 SamSung이 내세울만한 것은 없었다고 판단하자 많은 의견이 충돌되었다. 안드로이드란 운영체제를 탑재한 제품은 누구나 다 걸고 있었으며 사실 모토롤라의 제품이 더 뛰어나 보였다. 그래도 공통점이 있는 건 한국제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에서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교수님과 학우들의 2011 CES 방문에서 느낀 점을 말하고 아주 뜻 깊은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저녁은 김치로 먹으러 오는 것 같았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Las Vegas에서 한국말이 이렇게 많이 나오긴 아마도 이곳이 아닐까 한다.

김치레스토랑 옆에 한인이 운영하는 여행업체가 있었는데 Grand Canyon 관광이 139$ 라고 하여 그곳을 계약하여 다음날 아침 7시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7시에 Jack in the Box라는 Hamburger집으로 이동하여 아참을 햄버거로 먹고 다른 한국인들과 합승하여 Hoover댐을 경유하여 Grand Canyon에 가기로 하였다. 후버댐은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가는 길목에 보이는 것은 황량한 바위산과 나무는 없고 아주 작은 선인장 같은 풀만 있는 그런 땅에 후버댐이 있었다. 사실 Transformers란 영화에서는 아주 웅장하고 멋있었지만 실제로도 웅장하고 멋있었다. 그 규모에 놀라고 그걸 기계가 아닌 사람의 힘으로 끌과 정으로 그 당시에 만들었다는 걸 보고 미국의 힘에 놀라곤 하였으나 가이드가 댐을 건설하면서 사망자가 49명이라고 발표했는데 사실 대부분의 노동자가 중국인이었는데 중국인은 빼고 순수 백인들의 사망자 수만 집계하였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후버댐을 뒤로하고 Grand Canyon으로 이동하는 동안에 보이는 풍경은 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정통적인 서부였다. 황량한 벌판에 끝이 없어 보이는 아스팔트 그곳이 애리조나란다. 가끔 보이는 건물이 주유소와 식당이었는데 무슨 판자 집으로 엉성하게 지어 놓은 것처럼 허름해 보였다. 가는 길에 무슨 마을이 있었는데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정통 서부 마을이었다. 아주 작은 마을에 10여 채 정도 되는 건물에 식당과 슈퍼 그리고 은행까지 있었다. Joshua Tree라는 이상한 나무가 아주 많았는데 연방정부에서 관리한다고 하고 1천년이 되었다는 나무는 그리 크지 않고 보통 작은 소나무처럼 생겼지만 둘레는 약간 컸다. 과연 1천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라는 질문에 가이드는 “무슨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요?”라고 반문한다. 무슨 측정방법이 있었겠지. 미국은 대단한 나라니까. 또한 과학도 많이 발전되어 있으니까...,

인디언 자치구역에 Grand Canyon이 있다고 한다. 자치구역에 들어가니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주변에 소가 방목되어 있었다. Arizona주와 인디언과의 분쟁으로 서로 도로를 포장해야 한다고 하여 비포장도로가 되었는데 연방법원에서 Arizona주에서 설치하라고 하여 조만간 다시 포장한다고 하였다. 꼭 길이 어릴 적 외갓집 가는 길에 덜컹거리는 신작로를 닮았다. 그런 길을 한참을 달린 후에 다시 포장도로가 나오고 Grand Canyon에 도착하였다.

보통 우린 계곡이라고 하면 주변에 산이 있고 그런 걸 연상한다. 나도 Grand Canyon이라 하여 진짜 큰 산이 있고 “그 산에 오르려면 힘이 많이 들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주변의 평지인데 갑자기 뷰포인트라 하여 내렸더니 평지 아래로 웅장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저 감탄사와 낭떠러지 절벽에 오금이 저려서 가까이 다가 갈 수 없었다. 자연이 만든 독수리 상을 보니 곧 비상하려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인증 샷을 찍고 대자연이 이렇게 이곳에 그림을 그렸구나 하며 떡 벌어진 입을 손으로 잡고 다른 포인트로 이동하였다. 스카이워크라는 건물을 만들어서 유리바닥으로 계곡의 밑바닥까지 볼 수 있도록 하였는데 30$라고 하였다. 사실 밑바닥은 엎드려서 핸드폰을 가진 손을 길게 뻗어 사진을 찍고 그럴 보면 되는데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실제로 너무 오금이 저려서 사실 가고 싶지는 않았다.

두 번째 포인트에서는 좀 더 편안한 모습으로 계곡을 관람할 수 있었지만 역시나 천길  낭떠러지는 여전했으며 보다 좋은 모습을 보기 위해 올라가는 길은 아찔하였다. 절벽 옆으로 난 길은 한발만 잘 못 짚으면 그길로 인생 끝이었다. 4,000피트의 높이가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엄청난 높이에 무서웠다. 박쥐 똥을 화장품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채취하였다는 흔적이 있으며 그걸 케이블카로 연결하여 수송하였다고 한다. 군데군데 인디언들이 같이 사진도 찍고 자신들의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재현해 놓은 곳이 있었고 수공예품을 가지고 나와 팔기도 하였다. 우리랑 비슷하게 생긴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이렇게 비슷하게 생겼다니 진짜로 고대의 문화에 어떤 비밀이 있는 건 아닌지 공간을 워프하기 위해 피라미드와 고인돌을 지은 건 아닌지 나도 모르게 또 다른 공상을 하고 있었다. 이 곳 어딘가에 워프하기 위한 시설이 돌 속에 가려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의 인디언들은 정부에서 지원금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근데 그게 백인들의 전략이라고 한다. 더 이상 고민이 없어야 노력을 하지 않으며 마약에 취해서 그렇게 또 인생을 즐기면 끝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 곳의 땅 주인은 엄연히 인디언이며 그 땅을 되찾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제도권에 들어간 인물이 나와야 한다. 이제는 인디언 출신중에 변호사도 있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고 한다. 사필귀정이라 하지 않는가? 언젠가는 모든 인간들이 서로 조화롭게 사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조그만 바람을 기원했다. 박쥐 똥 채취하는 봉우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애리조나 카우보이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바비큐 폭립과 옥수수 그리고 빵과 쿠키를 먹었는데 미국에서 먹은 그 어떤 것보다 맛있었던 점심이었다. 카우보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소가 있었으며 조랑말과 각종 말들이 있고 도끼를 던질 수도 있으며 카우보이 할아버지와 같이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권총으로 빵빵 하며 공포탄을 쏘는 데 무척 귀여우셨다. 뭐라 알 수 없는 영어로 말하며 총을 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다리가 빠질 정도로 아팠다. 메시라는 백화점에 갔는데 호텔들과 연결되어 있고 또 백화점끼리 연결되어 있었다. NorthFace 점퍼를 꼭 사야 한다고 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NorthFace 매장을 물었는데 북쪽을 가리켜 준거 같은데 일행들은 NorthFace 매장이라며 북쪽으로 갔다. 당연히 매장은 없었다. 그 곳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한국말로 물었는데 우연히 그 사람이 한국말로 답변을 했다. 교포였다. 그 분 말로는 “아마도 이쪽에는 NorthFace 매장은 없다.“라고 그래도 모르니 매시에 들어가서 남성복 쪽을 찾아보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으며 여권을 가지고 백화점 Visitor센터에 가면 10% 할인 쿠폰을 주는 데 그걸 받아가라고 했다.

백화점에 가니 한국보다 가격이 많이 쌌다. 거의 절반정도의  가격이 신상품이었고 한국에서 9만원 하는 나이키 신발이 여기선 39$ 정도 했다. 난 신발을 샀다. 80$ 가격에 평소 한국에서 너무 비싸서 눈으로만 봤던 제품이었는데 이곳에서 절반 보다 낮은 가격이라 많은 생각 끝에 사기로 결정하고 카드 결제를 하였다. 그 자리에서 신발을 갈아 신었는데 이래서 다른 일행들이 운동화를 가지고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은 정말이지 편했다. 백화점끼리 연결된 중간 통로에서 카드 마법 같은 것도 하고 패션 쇼 같은 것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맥스토어보다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이곳에서도 맥은 역시나 항상 사람들을 끌고 다녔다. 통로에 있는 맥 매장에 갔는데 MacBook과 iPad 그리고 iPhone이 전시되어 있는데 미국인들은 의외로 iPad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iPad 앞에 사람들이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 iPhone MacBook 순이었다. MacBook Air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그렇게 Las Vegas에서 쇼핑을 마무리 하였다.

그날 저녁에 야경투어를 했는데 리베라 호텔이 Las Vegas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하였다. 신시가지는 주로 대형 호텔들이 있으며 호텔마다 자신의 테마에 맞도록 꾸며져 있었다.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의 대형호텔로 관광객을 빼앗기자 자구책으로 천장을 원통으로 씌우고 거기를 LED전구로 장식하여 천장에 쇼를 한다고 하여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리자 200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무슨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으며 입구에서 가수들이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있어서 그런지 저절로 흥이 났다. 요란한 치장을 한 사람들이 군데군데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1$의 팁을 주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9시 정각이 되자 천장에서 요란한 쇼가 벌어졌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LED 전구가 불을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나도 모르게 흥이 겨워졌다. 현지인 할머니인지 아줌마인지 구분이 잘 안가는 분들은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이곳의 문화가 맥주를 손에 들고 조금씩 마시며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는 게 낙인 거 같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Bellagio 호텔의 분수 쇼를 보러 갔는데 음악에 맞춰서 나오는 분수의 모습이 장관이었지만 15정도 공연을 했다. 금방 끝나지만 멋있기는 하였다. 그 다음에 베네치안 호텔에 갔는데 천장에 하늘을 그려 놓고 불을 켰 놓았는데 밤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낮이고 하늘이 진짜 같았다. 참 대단한 호텔인거 같다. 아무리 오래 있어도 항상 낮이기 때문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를 것 같았다.

호텔에 돌아와서 미국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PUB에 갔는데 이곳에서 저녁으로 스테이크와 윙(8조각의 통닭)을 시키고 기네스라는 맥주를 시켰다. 기네스는 흑맥주로 나왔으며 맛이 약간 쓰다. 주변을 보니 옆자리의 영국인들이 HARP 이라는 맥주를 주문하여 그걸로 바꾸었는데 이 맥주는 맛이 아주 좋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스테이크를 먹고 맥주를 마시고 진짜 이런 맛으로 미국인들이 사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중앙의 TV에서는 스포츠 중계가 나오고 주변에서 들리는 영어소리가 외국에 있는 걸 실감하게 했다. 이런 것이 Las Vegas의 문화가 아니겠는가? 결국 새벽 3시까지 미국문화를 즐기다 우리만 남아서 호텔방으로 이동하여 잠을 청하였다.

Las Vegas 시내를 확실히 보아야지 하며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겨 놓는 곳에 짐을 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Las Vegas 타워까지 걸어갔다. 눈에 보이는 거리지만 걸어 갈수록 멀다는 걸 느꼈다. 타워 앞까지 30분정도 걸었던 거 같다. 티켓을 끊으려 한참을 찾은 후에 16$를 주고 타워에 가려는데 관광객이라고 무슨 자리에 서서 이 곳 카메라를 보라하여 보았더니 기념사진을 찍는 곳인데 돈이 들어서 안한다고 했다. 이곳에서도 얄팍한 상술이 있는가 보다. 잘 모르는 관광객 같은 경우는 무턱대고 사진을 찍고 돈을 낼 거 같다. 타워에 올라가니 탁 트인 전망에 입이 쩍 벌어졌다. 다들 야경이 멋있다고 하지만 진짜 광경은 한 낮에 더 멋있는 거 같다. 이곳은 한국과 달리 대기 중에 먼지가 없어서 아주 먼 곳까지 가시거리가 나오는데 잊지 못할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유리창 쪽으로 다가 갈수록 오금이 조리며 아찔한 높이에서 보이는 광경 등 모든 게 아찔아찔했다. 특히 내국인 관광객들이 영어로 수다를 떠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도 분위기와 느낌 상 알 수 있었다. 남편보고 놀이기구를 타라고 하는데 남편이 자신은 늙어서 못타고 예전에 젊을 때 많이 탔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믿느냐고 하며 웃으시는 게 어느 나라나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사는 곳은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는데 하물며 나무와 흙이야 이곳과 그곳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끝없이 펼쳐진 공간에 반듯하게 길이 바둑판처럼 있고 그 나머지 빈 공간에 집이 있다. 이런 게  반복된 모습으로 정렬된 Las Vegas 시내는 꼭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열병되어 있는 군인의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쳐다보기도 어려운 데 그걸 뛰어 내리다니 그것도 돈을 내고 말이야. 위층에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을 바로 밑에서 볼 수 있었는데 차마 눈을 뜨지는 못하고 손잡이를 꽉 잡고 있는 모습이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타워를 뒤로 하고 선물센터에서 선물을 골랐다.

카지노에서 사용하는 칩 열쇠고리를 구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걸 줘야만 Las Vegas에서 사왔구나 하는 생각을 할 것 같았다. 생각 외로 기념품 칩의 가격이 낮았다. 기념품 옷을 구입했다. 두 번 또는 세 번을 돌아봐도 기념품은 정말이지 항상 제자리인거 같다. 아이들 기념품으로 가면을 사고 싶었으나 가격의 압박으로 칩을 사야 했다. 다음엔 좀 더 여유 있는 모습으로 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Shop을 나서야 했다.

Las Vegas에서 공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일행들이 모두 모였는데 일행 중 한명이 슬롯머신기계에서 돈을 땄다며 음료수를 돌렸다. 딴 사람도 있긴 있나보구나 하며 음료수를 들이켰다. 짐을 찾는데 팁을 주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Las Vegas 공항에 도착하여 LA행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저녁때가 되어서 NewYork식 피자와 콜라를 시켜 먹었다. 피자는 소스가 한국에서 사용하는 것과 달라서 이상한 맛이 났으나 그나마 치즈클러스터는 비슷하였다. 콜라는 어디가나 맛이 같아 무난한 음료인거 같다. 콜라를 마신 컵에 커피를 타서 가지고 왔다. 이게 바로 자장면을 시켜서 짬뽕까지 먹는 비법 아니겠는가? 그렇게 Las Vegas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SouthWest 비행기는 먼저 타서 자리에 앉으면 되는 방식이라 줄을 매우 빨리 섰다. 그리하여 창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며 이륙하면서 보이는 Las Vegas의 야경이 무척 아름다웠으며 또한 어떤 면으로 슬퍼 보이기도 하였다. 이제 "Las Vegas여 안녕 !" 이라는 말을 남기며 비행기는 LA로 떠났다. 미국은 매우 큰 땅에 가끔 보이는 불빛이 도시라 하였다. LA는 야경으로 보이는 것도 진짜 컸다. LA 공항에 내려서 아시아나 항공 탑승구로 이동하였는데 이곳에 오니 한국말이 들리고 한국 사람들이 그동안 전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다들 모여 있었다. 마치 한국의 어느 도시 공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해공항과 같은 느낌이랄까. 이곳의 면세점은 한국의 면세점보다는 가격이 비싸고 규모도 작았다. 일행의 대부분이 그렇게 느끼고 물건을 사지는 않았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여행이 마무리 되고 있었다.

아시아나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해외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당당히 맥주를 달라고 하여 Heineken을 마시면서 "나 미국서 한국 가는 사람이야" 라는 걸 느꼈다. 맥주를 두 캔을 마시니 알딸딸하여 잠을 청하였으나 그리 쉽게 잠은 오지 않았다. 영화를 보려고 했으나 출국하면서 봤던 영화가 그대로 나오고 있어서 영화를 외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비행기에서 13시간을 지내면서 점점 한국에 도착하는 시간이 다가옴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아침 7시였다. 일행들과 모여서 간단한 브리핑을 듣고 모두 헤어졌다. 그동안 미국음식을 많이 먹어서 몸에서 노랑내가 날지 모른다 하여 공항에서 국물이 있는 육게장과 순두부찌개를 먹고 가자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한국의 맛은 “바로 이 맛이야!”를 느끼며 나의 몸에 베어 있던 노랑내가 빠지길 바라며 공항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영종도를 뒤로 하고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던 미국 여행기를 마무리한다. 어느덧 공항버스는 집 앞에 나를 데려다 주고 한국의 추위를 몸으로 느끼며 이곳은 정말이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추웠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한국에 몸이 있음을 느꼈다. 이제 Las Vegas는 예전에 기대하던 꿈이고 CES에서 보여준 것은 앞으로의 꿈이다. 이제는 넓어진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다. 편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떨 때는 국수주의자로 또 어떨 때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지만 이제는 글로벌 한 관점이 무엇인지 조금 알 수 있다. 사실 우리 민족은 원래부터 글로벌 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조만간의 세상은 인터넷과 접목되고 그렇게 기계와 인간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갈 것이다. 그 네트워크의 중심에 무선 랜이 있으며 가전제품에 기본으로 무선 모듈이 탑재되어 각종 서버와 연결될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네트워크에서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사며 또 의견을 교류하지만 이는 현재의 삶을 그대로 투영할 뿐이다. 모든 기술의 중심엔 인류가 있고 그 중심엔 가족이 있다. 가족을 연결해주는 기술이 모든 IT 기술의 근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선진국들도 가족문화로 바뀌어 가고 모든 제품들도 가족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바뀔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도약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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