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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권리를 보장해줘야 성장할 수 있다.

논어 위정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한다." 라는 뜻이다. 예전 시험 공부를 할 때 느낀 것이다. 고 득점을 위해서는 반복학습을 해야 하는데  인간의 마음이 간사해서 반복 하다 보면 아는 것에 눈이 간다. 모의고사를 풀어보면 아는 문제는 항상 맞추지만 틀린 문제는 항상 틀린다. 나는 이걸 깨우치는 데 1년 6개월이 걸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한 다음 모르는 것에 집중하여 반복을 한다. 무엇을 배울 때는 실패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만이 내가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성현들이 아는 것에 왜 밝을 명자를 썼는지 이제는 알 거 같다. 이제는 누군가를 가르쳐야 할 때가 왔다. 실패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 보며 그 실패가 문제로 확산되지 않도록 만 해주면 된다. 이부분에선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이 앞서지만 참아야 한다. 실패할 경험을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에....,

논어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인이다

논어는 공자가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기록이다. 이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인이다. 인은 측은지심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논어는 인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극기복례를 제시한다. 예는 무엇인지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보통 예는 사양지심이다. 상대방에게 향한 마음이다. 이게 양심에 비추어 어긋남이 없으면 되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알아가는 것이 많아질수록 어렵다. 하지만 세상은 간단한 원칙으로 돌아간다. 그 원칙은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은 남에게 가하지 말라. 이것에 다 들어가지 않을까? 공자의 방법도 이것과 같다. 어긋남이 없는 것이라.....,

인생의 즐거움에 관하여

논어 제 1편 학이에는 즐거움이 나온다. 첫번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여기서 즐겁다에 '기쁠 열'자를 사용했다. 찾아보니 '기쁠 열'자의 뜻은 내면에서 솟아 올라오는 기쁨이다. 즉 혼자 느끼는 기쁨으로 볼 수 있겠다. 두번째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온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이때 즐겁다는 '즐거울 락'을 사용했다. '즐거울 락'은 사람간에 상호작용으로 기쁨을 느낄 때 사용한다. 즉 둘 이상이 느끼는 기쁨으로 볼 수 있다. 공자는 혼자 느끼는 기쁨을 최고로 치고 그 다음으로 둘이 느끼는 기쁨을 쳤다. 먼 곳에서 찾아온 벗에는 '벗 봉'을 사용했다. 왜 '벗 우'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벗 봉'은 뜻을 같이 하는 사이에 사용한다. 또는 한 스승 밑에서 배웠을 때도 사용한다고 한다. 즉 나이에 상관없이 마음에 맞는 사람을 중요시 했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같이 있는 시간이야 말로 '즐거울 락'자를 사용할만 하지 않는가?